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르빈 롬멜/평가 (문단 편집) === 보급 곤란을 자초했다? ===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전선을 바라보는 독일의 관점과 이탈리아의 관점의 차이가 중요하다. 독일의 관점에서, 아프리카 전선은 제2 전선으로서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전선에 가까웠다. 반면 이탈리아 입장에서 아프리카 전선은 이탈리아의 이익과 본토 방어를 위해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전선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탈리아의 장비들은 심각하게 낙후되어 있었다. 물론 이탈리아군 부대중 영웅적인 활약을 보인 부대는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이건 일부 부대의 사례고, 일반적으로 아무리 군대가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고 싶어도 부대 장비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다. 이걸 영웅적인 부대가 했으니 하라는건 전형적인 일본군식 정신력 드립일 뿐이다. 구식인 이탈리아군 전차로는 영국의 [[마틸다 II]]조차도 아예 상대할 수 없었다. 참고로 아프리카 전선에서 이탈리아군이 주력으로 쓴 전차는 [[M13/40]]으로, 문제의 일본군 [[치하]] 전차에게도 스펙에서 밀리는 수준의 전차다. 전차전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수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군은 아프리카 전선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고, 이탈리아군을 박박 긁어다 롬멜에게 보내준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전차전에서 이탈리아군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독일군조차 판저파우스트나 판저슈렉 같은 보병용 대전차 화기가 없던 상황에서, 이탈리아군 보병이 과도하게 많은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군과 다른 점은 일본군은 그런 상황에서 대전차 총검술을 내세워 [[덤앤더머|보병으로 돌격을 강요했다는 것이고]], 독일군 장교들은 그런 무의미한 생각을 안했다는데 있다. 문제는 그런 상태의 잉여전력이 독일군 전력의 3배 이상이라는 것이다. 1942년 11월 기준으로 독일군 4개 사단이 편제된 아프리카 전선에, 이탈리아군 12개 사단이 편제되어 있었다.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보병이라고 보급품 안 먹는 것도 아니고, 구형 전차면 기름 안 넣어도 굴러가는거도 아니다. 이탈리아군의 보급 수요는 독일군에 비해 휠씬 컸으며, 이는 영국보다 빈약한 전력을 가진 독일군이 보급난에 시달린 주 원인이다. 즉 북아프리카 전역을 열어버린 이탈리아가 사활을 걸고 북아프리카를 지켜내고자 이리저리 내달린 영국을 그것도 본토는 독일 U보트로 고생하고 있는 영국 하나 잡지 못할 정도로 국가와 군대의 전반적인 국력이 부족했으며 본토에 가두어 놓고서도 왕립 공군의 방공망을 뚫는데 실패한 독일의 입장에서도 영국군에 상응하는 한개 군 수준의 병력을 투사해야 했지만 [[독소 전쟁]]이라는 자충수 덕분에 그러할 역량조차 되지 않았다. 프랑스 침공 당시 비록 조공이긴 했지만 독일 B집단군이 잘 준비된 영국해외원정군 방어선을 뚫는데 고생했던 것을 고려하면 결국 롬멜의 보급 문제는 이탈리아가 지중해 영국군 세력을 공략하지도 못할 정도의 전력으로[* 아예 크레타 섬은 독일군 공수부대가 투입돼서 엄청난 피를 보고나서야 점령할 수 있었으며 몰타 섬의 경우 이탈리아 공군은 딱히 의미있는 피해를 주지도 못했다. 그나마 2차 공방전부터 독일 공군이 들어가고 나서야 유의미한 타격을 주는가 싶었는데.... 비슷한 시기 롬멜이 공세종말점의 영국군을 밀어붙이면서 루프트바페가 몰타섬에서 이집트쪽으로 옮겨갔고 그 사이 영국군은 그 동안 입은 피해를 복구해버렸다.] 멋대로 북아프리카 전역을 열어버린 이후 폭망해버린 시점부터 예정되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